통상약장태극문양
1874년 청나라에서 발간된 "통상조약장정성안휘편"이라는 책 표지에 그려진 태극문양으로 1991년 해군사관학교도서관에서 발견되었다. 이 그림은 "태극문양"에 불과할 뿐 "태극기"는 아니다. 그 이유로는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1882년에서야 태극문양을 넣어 그린 기를 가리켜 고종황제가 정식으로 "조선국기"(지금의 태극기)라고 명명했기 때문이다.
최초의 태극기
1882년 수신사 박영효가 일본을 방문할 때 고종황제로부터 크기, 문양, 색깔, 설명까지를 지시받고 일본으로 가던 메이지 마루호 배안에서 그린 태극기로써 1882년 9월 25일 고오베 니시무라야 숙소 옥상에 게양했었다. 그후 실물은 없어지고 그림조차 확인할 길이 없었으나 태극기연구가 송명호에 의해 일본 동경도립중앙도서관에서 발견되어 116년만인 1997년 8월 14일 KBS밤 9시
뉴스 및 15일 전국 일간지에 공개되었다. 괘의 모양이 지금처럼 「건,곤,감,이」가 아닌 「손巽,간艮,진震,이離」였음을 알수 있으며 이것은 방향을 표시한 의미였다. <사진은 왼쪽그림을 칼러 그래픽한 것임>
데니씨 소장 태극기
미국인으로 조선말기 1886년 외교 고문이었던 데니씨(Deny, Owen N)가 소장했던 것으로 알려진 태극기.데니씨는 당시 조선왕조를 간섭하던 청나라를 신랄하게 비난하였던 미국인 외교 고문이었다. 이런 일로 데니씨는 1888년 청나라에 의해 외교 고문직을 물러났고 그후 "청국과 조선"이라는 책을 펴내 청나라가 조선에 대하여 저지른 갖가지 횡포를 공개했다. 음방과 양방의 몸체는 가늘고 길다. 통상약장태극문양과 비슷하나 음방과 양방의 위치가 다르다.
박정양 소장 태극기
박정양(1841.헌종7년∼1904.광무8년)은 조선왕조 말기 정치인.1881년에 신사유람단이 되어 일본 문물을 시찰하고나서 '일본내무성및농림성시찰서' 등 저서를 펴냈다. 1887년 초대 주미전권공사로 임명되었으나,중국의 방해 공작으로 년말이 되어서야 미국으로 떠나 신임장을 제정하고 워싱톤 15번가 주미공사관 건물에 태극기를 게양하였다. 박정양 소장 태극기는 1884년에 만든 것으로 추정되며,그후 1900년 이화학당 4대총장 Frey씨가 똑같이 그려 사용하였고, 스미스소니언에서도 구입하여 소장중이다.
독립신문제호 태극기
항일독립운동가이자 최초의 의사였던 서재필 박사에 의해 1898년 7월 1일부터 발간된 독립신문 제호에 실린 태극기. 당시 독립신문의 제호 태극기는 발행될 때마다 그 모양이 달랐는데 아마도 태극기에 대한 구체적인 규정이 없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괘의 위치도 지금과는 아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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